정보화마을 전북 고창 반암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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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역마을소개


    반암

    반암은 고려 말 1300여년대 초 달성 서씨가 집단으로 반암에 들어온 것이 고을 형성의 계기로 본다. 그런데 고려 말 정치의 혼란으로 인해 반암 마을 역시 민심이 크게 혼란해졌다. 그 이유는 반암 마을에 산적들이 수시로 나타나 마을 사람들을 괴롭히고 양곡을 수탈해 갔기 때문이다. 이때 '서중림'이라는 사람이 마을사람들을 이끌고 산적과 대판걸이 싸움에서 이기고, 그들에게 심원면 수다리에 화염터를 만들고 소금을 구워 팔도록 가르쳐 준 뒤부터 산적들의 침입없이 평화로운 마을이 되었다.

    마을 주변에는 옥녀봉, 탄금대, 가마바위, 소반바위, 등잔바위, 병바위, 탕건바위가 있다. 그리고 마을을 중심으로 한 주변 산은 차일봉과 선인봉으로 풍수적으로 볼 때 완벽하리만큼 잘 짜여진 형세를 갖춘 마을로 알려져 있다. 풍수적 구전을 풀어보면 반암마을에 결혼식이 있었던 날 선인봉에서 신선이 말을 타고 내려오게 된다. 신선은 옥녀의 거문고 소리에 취하고, 술맛에 취해 등잔을 밝히면서까지 술을 마시다가 결국, 그 자리에서 쓰러지게 되었는데 쓰러지면서 술상을 발로 차버렸다. 그 자리가 바로 "선인취와혈(仙人醉臥 穴)이다. 또한 신선의 발에 차인 술병은 인천강 강가 주변에 거꾸로 박혀 병바위가 되었고, 술상은 굴러 소반바위가 되었고, 가야금 받침대인 탄금대 바위의 사연들이 반암과 호암 마을에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그래서 그 지역 지명은 소반'반'자, 바위'암'자를 합하여 반암이라 하였다.

    반암리와 행정구역이 같은 영모마을 뒤편에는 전좌바위 하부 두암 초당이 있다. 이는 조선시대 하서 김인후 선생 문하에서 변인천, 변호암 형제가 이 곳에서 공부를 하였다는 내용이 '초개 변씨'보에 나타나 있는 곳이다. 탄금대는 초개 변씨 선산으로 변인천, 변호암의 산소가 남아 있다

    반암마을을 풍수설과 다시 연계 지어보면 선인봉에서 결혼날 신선이 말을 타고 내려와 말에게도 자유로움을 주기 위해 말안장을 벗겨 놓은 것이 말안장바위가 되었으며, 말을 탑정의 탑에 묶어 놓은 것이다. 술에 취한 신선이 날이 어두워져도 술에서 깨어나지 않자 말이 울어 신선을 깨웠던 곳이 마명(馬鳴)마을이다.

    마영

    임진왜란이 일어나던 1592년경부터 촌락이 형성, 주로 유목민들의 근거지로 말 위주의 가축을 기르는 목초지로 이용되어 오다가 1894년 갑오개혁이 일어나던 때부터 유목민이 모여 사는 마을로 형성되었다.

    뒷산이 천마습풍이 있으며 구시 우물과 말방울 바위가 2개가 있고, 말이 물지 못하게 하는 자갈재 등이 있어 '마명'이라 부르게 되었다. 풍수에서 볼 때 이 마을은 반암마을에서 술을 마시고 쓰러져 있는 주인인 신선을 깨우기 위해 울었다는 구전도 전해오고 있다.

    호암

    선인이 술에 취해 쓰러지면서 술병을 차버려 술병이 거꾸로 선 것이 병바위가 되고 술상은 가서 금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호암리는 병'호' 바위'암' 병바위, 즉 소반바위가 병바위를 바라보고 있는 마을이다. 그리고 선인취와, 금반옥호라는 호남 8대 명당이 숨어있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호암 주산은 와우형이며, 인천강이 바라보이는 호암 앞 모서리는 '연화부수'형으로 알려져 있다.

    2003년 산촌개발 마을로 지정되어 마을회관 건립과 진입로 정비, 하우스 시설 등 14억원을 투자하여 기반시설을 갖추고 있다.

    탑정

    고려시대에 이 곳에 탑이 3군데 있었는데 그 중 큰 절의 석탑이 있었고, 아름드리 정자나무가 있었다 하여 마을 명칭을 탑정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탑 받침대로 추정되는 1점의 돌이 주민 정만택 자택 정원에 있다.

    이곳에 1994년 고창군에 복분자 공장이 최초로 설립되었으며, 복분자 술이 지역 명산품으로 주민 소득 증대에 기여하고 있다.

    강정

    전설에 의하면 1681년 고창군 고수면 먹점에서 살던 백노수라는 사람이 세금 때문에 피신하기 위해 하천 줄기를 따라 이 곳에 정착, 생활 터전을 잡은 곳이 강정이며 그 후 김해 김씨가 이주하면서 부락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마을 어귀에는 정자나무(팽나무)와 커다란 연못이 있고, 이 연못은 1년 내내 낚시꾼들이 모여 들었다고 한다. 강정은 흥덕현에 속했던 홍강과 무장현에 속했던 무강의 자연부락이 있으며 인천강의 하류에 위치하고 있어 풍천장어, 참게, 은어를 잡는 지역으로 한때는 유명했다.

    지금은 깨끗한 청정지역의 옛 명성을 찾기 위해 인천강 살리기 일환으로 추진하고 있는 참게 방류 사업이 새로운 주민소득원으로 기대되고 있다.